인간의 오래된 발명품, 기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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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도구를 쓰면서 문명이 발달해 왔다. 여러 가지의 발명품이 있지만 그중에 기중기는 도시의 마천루를 실현시켜 준 도구다.
기중기는 도르래와 끈 혹은 철사를 구조에 설치한 기계로 무거운 짐을 수평이나 수직으로 움직이게 한다. 기중기는 인간이 혼자 힘으로 들어 올릴 수 없는 물건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들면서 사회 발전 즉 도시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기중기는 고대 BC 550년경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그보다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그리스 건축 구조물에 남아 있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대규모 건설에 기중기를 사용했으며 무거운 짐을 옮기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플루타르코스의 <마르켈루스의 생애>에서‘아르키메데스는 알맞은 양의 힘을 가하면 어떤 중량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라고 했는데 당시 아르키메데스의 갈고리발톱은 침략 선박을 높이 들어 올린 후 내던져서 부숴버리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기중기는 고대 그리스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도 무게가 무거운 돌을 들어 올려 쌓는 건물 축조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지만 그 이후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다가 중세 후기에 재등장하면서 오늘날까지 실생활에 여러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기중기를 사용하고 건축물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브뤼겔의 <바벨탑>이다.
강 근처 도로 옆 거대한 건물이 높이 솟아 있다. 건물 뒤에는 도시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도시가 보인다. 거대한 건물은 나선형 계단을 따라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구름이 걸쳐져 있는 꼭대기는 하늘과 맞닿아 있다.
건물 하단에 인부들이 돌을 나르고 있고 탑 꼭대기까지 오르는 계단 중간에 붉은색 막사가 몇 개 설치되어 있고 나선형 건물 중간 경사로에 거대한 기중기가 설치되어 있다.
발로 밟아 돌을 올리는 기중기는 당시 안트웨르펜 시장에서 팔고 있었으며 기중기로 몇 톤이나 되는 돌덩어리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바벨탑>-1563년, 오크 패널에 유채, 114*155,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붉은색 막사는 커다란 건축물을 짓는 현장이라는 것을 나타내는데 당시 임시 막사는 인부들이 쉴 수 있게 설치되어 있었다.
화면 오른쪽 하단 머리에는 왕관과 푸른색 도포를 입은 왕이 무사와 사냥꾼들을 이끌고 건설 현장을 방문하고 있고 돌을 깨고 있던 석공들은 양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왕관과 푸른색 도포를 입은 남자는 나므릇 왕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건설 중인 거대한 건축물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지상에 사는 사람들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서로 말이 통했던 그들은 도시를 세우기로 한다. 공동체 의식이 강했던 그들은 ‘도시에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아서 우리의 이름을 널리 알리자’라며 탑을 세우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벽돌로 탑을 쌓는 것을 본 하나님은 그들의 자만심을 벌하기로 하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서로 떨어뜨려 놓은 다음 말이 통하지 않게 하셨다. 말이 통하지 않자 사람들은 탑을 완성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사람들이 서로 통하지 않게 말을 뒤섞어 놓았다고 해서 도시를 혼돈을 뜻하는 바벨이라고 불렸으며 미완성인 탑은 바벨탑이라고 불렸다.
나므릇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석공들의 인사 방식은 유럽의 관습이 아니었다. 유럽에서 백성은 군주 앞에서 한쪽 무릎만 꿇었다. 양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석공의 자세는 그림의 배경이 동방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브뤼겔은 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을 16세기 안트웨르펜의 현실로 바꾸어서 묘사했는데 당시 안트웨르펜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가는 바닷길이 열리면서 교역의 중심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서구 세계의 금융 및 경제의 중심지인 안트웨르펜에 교역을 하려는 각국의 상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은 혼란을 겪었다. 규모가 작고 통제하기 쉬운 지역사회였던 안트웨르펜에 언어와 관습이 다른 외국인의 편입은 주민들에게 혼란을 야기 시켰으며 사람들은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의 문제를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의 우화에서 찾았다.
피터르 브뤼겔<1525경~1569>은 안트웨르펜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시날 들판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 바벨의 강변을 택했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해상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했는데 돌처럼 규모가 큰 물품을 수송할 때는 비포장 국도가 아니라 수로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바벨탑 뒤,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많은 집들은 도시의 발달을 나타낸다.
기중기는 도시 발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기중기를 통해 항해술이 발달한 고대 도시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렘브란트의 <에우로파의 납치>다.

<에우로파의 납치>-1632년, 패널에 유채,
62*77, LA 장 폴 게티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제우스는 페니키아 아게노르의 왕의 딸인 아름다운 에우로파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제우스는 흰색의 황소로 변신한 다음 시녀와 함께 산책하는 강가로 갔다. 에우로파는 흰색의 황소를 발견하고 처음에는 겁을 먹지만 곧 호기심에 황소를 쓰다듬으면서 황소 뿔을 화관으로 장식한 다음 대담하게 올라탄다. 에우로파가 등에 올라타자마자 제우스는 단숨에 페니키아의 크레타 섬으로 달아났다. 제우스가 에우로파를 데려간 곳이 지금의 유럽이다. 제우스와 에우로파의 사랑으로 3명의 아들 미노스, 라마만티스, 사르페돈을 낳았다.
이 작품에서 황소로 변한 제우스가 에우로파를 태운 채 바다를 건너고 있고 에우로파는 황소의 뿔을 움켜쥔 채 시녀가 있는 뒤를 돌아보고 있다. 화면 중앙에 있는 푸른 옷을 입은 시녀의 무릎에는 화관이 놓여 있다. 오비디우스의 책에 따르면 에우로파가 납치당하는 순간이 황소의 뿔에 화관을 달기 전이다.
렘브란트 반 레인<1606~1669>의 이 작품에서 멀리 배경으로 보이는 범선이 가장 특이하다. 에우로파의 고향 페니키아는 지금의 레바논으로서 고대 페니키아 인들은 선원으로 이름이 날렸다. 렘브란트는 페니키아인들의 항해술을 묘사하기 위해 이 작품에 희미하게 당시의 범선과 기중기를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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