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 나를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

페이지 정보

  • 청소년단체협의회
  • 작성일[18-06-21]
  • 조회 (58)
  • 0

본문

 









  요즘 식당이나 관광지, 미술관, 음악회 등등 어느 곳을 가든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셀카를 찍는 가장 큰 이유는 친구나 가족, 지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셀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 원하는 것처럼 화가들도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고자 한다.
  성공에 대한 자부심을 그린 화가가 렘브란트 반 레인 (1606~1669)이다. 그의 성공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젊은 날 그린 <자화상>이다.
  기중기는 고대 BC 550년경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그보다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그리스 건축 구조물에 남아 있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대규모 건설에 기중기를 사용했으며 무거운 짐을 옮기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모피와 비단으로 멋을 낸 벨벳 외투를 입은 렘브란트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난간에 기대어 있다. 난간에 기대고 있는 팔꿈치에 두른 두툼한 스톨은 화려하고 멋스럽다.
  앙 다문 입술과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렘브란트가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화려하지만 어두운 색상의 옷은 밝은 배경과 대비되면서 인물을 돋보이게 만든다.
  모피와 비단으로 장식한 벨벳 외투는 화가로서의 성공을 나타내며 그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암시한다.

<자화상>
1640년, 캔버스에 유채, 102*80, 런던 내셔날 갤러리 소장

 

  렘브란트는 사치품을 좋아해 수입의 대부분을 사치품을 사는데 사용했는데 그가 사치품에 과도하게 많이 샀던 것은 시장의 딸인 사스키아와 결혼하고 난 후였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명성과 아내의 집안에 어울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사치품을 많이 샀다.
  그의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자화상이었다. 그는 44년이라는 창작활동기간 동안 자신을 모델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화가로서 입문하던 생애 전반기에서부터 시작한 자화상은 고통이었던 생애 후반기에까지 이어진다.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자신의 인생의 시기마다 그렸다거나 모델의 표정의 변화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그린 것은 아니다. 자화상 속의 렘브란트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귀족, 성경속의 인물,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역사나 신화를 통해 근심에 찬 모습, 환희에 찬 모습, 상냥한 모습, 자신만만한 모습, 오만한 모습, 환멸에 찬 모습 등등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화상을 그렸다.
  렘브란트의 이 작품은 전반기, 그의 인생에서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던 젊은 날을 대표하는 자화상으로 난간에 기대고 있는 자세와 약간 치켜뜬 눈은 오만한 성격을 나타낸다.
  오른쪽 렘브란트, 1640년이라고 쓰여 있는 서명은 화가로서의 그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의미한다. 렘브란트라는 서명은 그가 고향을 떠나 출세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사용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곧 성공으로 이어진다.
  셀카는 미래에 대한 도전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고 싶었던 것, 해야 할 것을 체험하면서 그 모습을 셀카로 기록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통해 미래의 나를 그려 볼 수 있어서다.
  자화상을 통해 앞으로의 결심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프리다 칼로(1907~1954)의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이다.
  프리다 칼로는 손에는 가위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다. 그녀는 남성용 셔츠와 구두를 신고 커다란 남성용 양복을 입고 있고 머리 위에는 ‘이봐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건 당신의 머리카락 때문이야. 이제 당신은 머리카락이 없으니 난 당신을 더는 사랑하지 않아.’라고 쓰여 있다. 바닥에는 잘려진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다.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
1940년, 캔버스에 유채, 40*27,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



  짧은 머리와 바닥에 흩어져 있는 머리는 프리다가 가위를 들고 직접 머리를 잘랐다는 것을 나타내며 그녀가 머리를 자른 것은 더 이상 남편 리베라와 영향력을 받지 않겠다는 프리다의 결심을 의미한다. 리베라는 프리다의 긴 머리를 좋아해 그녀는 항상 머리를 길렀다.
  머리 위에 쓰여 있는 문구는 1940년대 유행하던 멕시코 대중가요의 한 구절로 프리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했다.
  커다란 남성용 양복은 리베라의 옷으로 리베라는 키가 크고 비만이었다. 남자용 양복과 남성용 셔츠를 입고 있는 것은 프리다의 독립을 나타내는데 리베라는 테우나 멕시코 전통의상을 사랑했다.

 

  그녀가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리베라와 이혼 일 년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화가로서 성공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전차사고 후 척추가 다친 프리다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당시 멕시코의 위대한 벽화가이자 공산주의자였던 리베라에게 자신의 재능을 평가받고 싶었다. 그녀는 리베라에게 리베라가 프리다의 작품을 보고 찬탄을 보내자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프리다는 리베라와 그림으로 만났지만 박식하고 자유로운 가치관을 가진 그에게 빠져 든다. 결국 프리다는 존경하던 리베라에게 적극적으로 구혼해 21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을 한다.
  하지만 프리다와 달리 리베라는 결혼 생활에 만족을 하지 못했다. 그는 프리다와 결혼 한 후에도 모델, 영화배우, 심지어는 미국에서 프리다의 여동생과 불륜에 빠진다.
  리베라와 여동생과의 애정행각으로 큰 상처를 입은 프리다는 고통스러워했다. 프리다의 고통을 지켜본 리베라는 그녀에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 이혼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권유했고 그녀는 받아들인다. 프리다는 이혼 후 리베라로부터 정신적, 경제적으로 자립은 물론 리베라가 원하던 여성적인 이미지를 버리면서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프리다의 작품의 3/1에 달하는 55점이 자화상일 정도로 그녀가 가장 선호했던 주제가 자화상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자화상을 그렸으며 자화상을 통해 육체적인 고통, 리베라를 향한 사랑, 슬픔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감정적인 것에 치우치다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을 잃어버린다. 사회적 관계, 가족에 대한 의무, 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공지사항 2016년 여름호 발간안내 인기글
상단으로